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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몰랐던 집안의 규칙을 떠올리며

📑 목차

    그때는 몰랐던 집안의 규칙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니 어릴 적 집안에는 분명한 규칙들이 존재했지만, 그것들은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일정한 생활 흐름이 유지되는 차분한 가정의 실내 모습

     

     

    “이건 왜 그래?”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늘 비슷했다. 그냥 그렇게 해왔다는 말, 원래 그런 거라는 말들이었다. 그 규칙들은 문서로 적혀 있지도 않았고, 명령처럼 강요되지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모두가 알고 있었고 모두가 따르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 규칙을 답답하게 느꼈다.왜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야 하는지, 왜 물건을 쓰고 나면 꼭 제자리에 둬야 하는지, 왜 굳이 불편해 보이는 방식을 유지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가 집을 나와 나만의 생활을 꾸리게 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규칙들은 통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루를 무사히 지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는 것을.

     

    뒤늦게 이해하게 된 것은 그것은 사실 삶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용한 구조였다. 그때는 불필요하게 느껴졌던 규칙들이 사실은 생활을 단순하게 유지하기 위한 기준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자유롭게 사는 것이 더 편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준이 없을수록 하루를 유지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점도 경험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그때의 규칙들이 삶을 오래 이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현실적인 방법이었다는 사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1. 집안의 말 없는 규칙들 부모님의 생활 방식이 나에게 남긴 것

     

    그때는 몰랐던 집안의 규칙을 떠올리며 오랫동안 부모님의 생활 방식은 나에게 낯설었다.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세계화의 가속과 가정용 인터넷의 확산, 그리고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같은 사건들로 형성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자란 나에게, 그들의 삶은 느리고 반복적이며 때로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보였다.

     

    왜 같은 일과를 고수하는지, 왜 매일 같은 자리에 물건을 되돌려 놓는지, 더 빠르고 쉬운 선택지가 이미 존재하는데도 왜 불편해 보이는 방식을 유지하는지 나는 자주 의문을 가졌다.

     

    아주 조용히 시간이 관점을 바꾸게 해 주었다. 20대 후반이 되어 월세를 내고, 매달 고정 지출을 관리하며, 전기 사용료, 모바일 데이터 사용료, 생활비를 한 푼 한 푼 계산하기 시작했다.

     

    나는 부모님의 생활 방식이 성격이나 고집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현실, 제한된 자원, 그리고 장기적인 책임 속에서 형성된 선택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것은 편안함이나 체면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버티기 위한 선택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만들어진 그 조용한 구조는 지금의 나의 삶에도 깊은 흔적으로 남아 있다.

    2. 반복된 일상  말로 설명되지 않았던 질서

     

    우리 집의 하루는 늘 익숙한 리듬을 따랐다. 아침. 저녁. 잠. 기상 시간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식사 시간은 늘 비슷했으며, 취침 시간도 일정한 범위 안에서 유지되었다.

     

    신발을 두는 위치, 외투를 거는 자리, 수건을 개는 방식, 식탁에 앉는 순서까지도 마치 정해진 규칙처럼 보였지만, 그것을 규칙이라고 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누가 정해 놓은 것도 아니었고, 어길 경우 혼이 난 기억도 없다. 다만 수십 년 동안 반복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굳어진 말 없는 틀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때는 몰랐던 집안의 규칙을 떠올리며 그 틀은 설명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고, 모두가 따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반복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숨이 막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는 삶은 발전이 없는 삶처럼 보였고, 익숙함은 안정이 아니라 정체를 의미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다른 집들은 더 자유롭고 유연해 보였고, 우리 집은 유난히 단단한 틀 안에 갇혀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매일 비슷한 하루가 이어진다는 사실은, 가능성이 닫혀 있는 삶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반복을 ‘선택의 부재’로 이해했고, 질서를 ‘자유의 반대편’에 놓았다. 하지만 그 인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직접 하루를 관리하며 살아보니 생각은 달라졌다. 뒤늦게 이해하게 된 것은 반복은 의미 없는 고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확실성을 줄이는 장치였고,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부담을 낮춰 주는 구조였으며, 사소한 결정에 소모될 에너지를 아껴 정말 중요한 책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었다.

     

    오늘 무엇을 입을지, 언제 무엇을 할지, 어디에 무엇을 둘지 매번 새로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은 생각보다 강력한 안정감을 만들어 주었다.

     

    돌이켜 보면 반복은 삶을 단순하게 만들었고, 그 단순함은 곧 지속 가능성으로 이어졌다.

     

    반복은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유의 기반이었다. 하루의 기본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 위에서 다른 선택을 시도할 수 있었고, 예기치 못한 변수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반복된 일상은 삶을 고정시키는 틀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바닥에 가까웠다. 그 바닥이 단단했기 때문에, 변화가 와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실제로 이러한 효과는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미국 노동통계국(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BLS)의 American Time Use Survey에 따르면, 성인은 하루 24시간 중 평균 2~3시간을 가사 및 일상 관리에 사용하며, 일정한 루틴이 형성된 경우 의사결정 피로가 감소하고 전반적인 생활 효율과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출처: 미국 노동통계국(BLS) American Time Use Survey
    https://www.bls.gov/tus/  

     

    이는 반복된 일상이 단순한 습관을 넘어, 삶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현실적인 구조임을 보여 준다.

    돌이켜 보면, 우리 집의 반복된 일상은 변화에 저항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하루를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마련된 가장 실용적인 질서였다.

    그때는 말로 설명되지 않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분명하게 보인다.

     

    그 반복 덕분에 삶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고, 그 질서 덕분에 하루는 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기준으로 남아 있다.

     

    3. 안정과 지속성: 속도보다 균형이 중요했던 이유

    그때는 몰랐던 집안의 규칙을 떠올리며 부모님의 삶은 늘 안정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지속성에. 그들은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느림은 무기력이나 망설임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검증된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삶을 오래 이어 가는 데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방법이 등장할 때마다 즉각 반응하기보다,

     

    이미 몸에 익은 방식이 실제 생활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 왔는지를 먼저 고려했다. 변화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변화의 속도를 조절했던 것이다.

     

    안정은 정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이었다. 정해진 생활 리듬과 제한된 선택은 삶의 가능성을 좁히는 장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무엇을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은 정신적 소모를 크게 줄였고, 사소한 결정에 흩어질 에너지를 아껴 정말 중요한 책임과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매번 새로움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 속에서 삶은 훨씬 단단해졌다.

    부모님이 선택한 방식은 단기적인 성과를 보여 주지는 않았다.


    눈에 띄는 변화도, 빠른 결과도 없었다. 그러나 그 대신 생활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작은 변수 하나에도 무너지지 않는 구조는 하루하루를 무사히 통과하게 했고, 그 누적은 결국 긴 시간 동안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빠르게 앞서 나가는 것보다, 오래 버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은 그렇게 일상 속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연구는 이러한 선택을 뒷받침한다. 하버드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안정적인 루틴과 습관적 행동은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를 낮추고, 반복적인 의사결정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부담을 줄여 장기적인 정신적 안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구조는 단순한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와 정신을 동시에 보호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출처: https://scholar.harvard.edu/

     

    이제는 나도 그 감각을 이해한다. 뒤늦게 이해하게 된 것은 속도를 늦춘다고 해서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균형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선택일 수 있다. 변화는 언제나 가능하다.

     

    하지만 균형은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부모님이 지켜 온 안정과 지속성의 방식은, 빠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삶의 중심을 잃지 않게 하는 기준이었고,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방향으로 남아 있다.

    4. 시간이 지나  내 기준이 되어버린 규칙들

     

    시간이 흘러 그때는 몰랐던 집안의 규칙을 떠올리며 나는 부모님의 생활 방식을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로.

     

    물건을 같은 자리에 두고, 하루의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충동적인 선택을 피하는 태도는 과거에는 답답했지만 이제는 나를 붙잡아 주는 기준이 되었다.

     

    이 변화는 감정적인 것이 아니다. 아주 현실적인 변화다. 2025년 기준, 통계청(KOSIS)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간 소비지출은 약 2,800만 원을 넘어서고 있으며, 주거비·공공요금·식비 부담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출처: https://kosis.kr/

     

    이런 환경에서 생활의 기준을 세우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뒤늦게 이해하게 된 것은 부모님의 삶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기준이었다.

     

    2024년 미국 노동통계국(BLS)의 분석에 따르면, 가계 소비 패턴은 세대별 가치관과 장기적인 재정 안정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출처: https://www.bls.gov/news.release/cesan.nr0.htm

     

    이 결론은 내가 직접 겪고 있는 변화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결국 집안의 규칙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통제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생활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기준에 가까웠다.

     

    반복되는 행동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 흐름은 일상을 단순하게 만들고, 불필요한 선택에서 오는 피로를 줄여 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구조가 삶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부모님이 남긴 것은 규칙의 목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버티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조용하고 반복적이며 절제된 균형의 방식은, 지금도 내 삶에서 가장 오래 남아 있는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